잠이 쏟아지는 오후 1시 15분.
창밖은 파랗고 하얘서 눈이부시고 그와 동시에 눈이 미친듯이 감긴다.
새는 날아다니고 나뭇가지는 바람에 흔들리고 구름은 흘러가며 사무실은 키보드소리로 고요하다.
나는 지금 매우 졸린데 모두 지금 이시간을 어떻게 이겨갈지 살짝 궁금해진다.
도면을 켜놓고있기야 한다. 일각법이나 삼각법이니 바꾸는 것도 귀찮고 저렇게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데 어떻게 업무에 집중할수있을까?
물론 일이 있으면야 일이 우선이지만 지금 당장 업무가 없기때문에 살짝 여유를 부려본다.
저 구름은 살짝 강아지를 닮았다.복슬복슬한 사모예드과의 구름
그리고 흩날리는 구름은 파도치는 바다같다.
바다에 놀러갈 예정인데도 바다를 보고싶다.
커피를 들이켰다. 졸린건 가시지않지만 그래도 의무적으로 들이킨다. 도면을 이리저리 옮기고 다시 하늘을 보면 강아지 구름은 어느새 사라져있다. 저것들은 별로 특색이 없네..
그래도 나뭇가지는 여전히 살랑거린다.
참다못해 커피를 추가했다. 회사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는건 참 좋은일이야.
밖에 나가고싶기도 한데 엄청 더울거같다,
오늘저녁엔 약속이 있고 내일저녁엔 당근마켓을 하고 목요일 저녁엔 운동을 가고 금요일 저녁엔 청소를 하고
저녁약속은 솔직히 가기싫고 당근마켓은 회신이 안오는상태고 목요일저녁운동은 아직까진 와닿지않고 금요일 저녁 청소엔 뭘 할지 고민된다.
생각을 나열해보는 것은 즐겁다. 지금 당장은 지루함을 떨쳐버리기위해 무언가 하는 시늉을 하는거지만 이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한참뒤에 다시 봤을때 재미있을거라는걸 안다.
심지어 이미 겪어봤다.
나는 살짝 저장강박증같은게 있는듯하다. 사진을 지우기도 어렵고 편지를 버리는것도 어렵고 오래된 인형을 버리는것도 어렵다. 그런데 이게 편지가 소중하다거나 인형이 불쌍하다거나 하기보다는 나라는 인간의 유산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나 자신을 정립하기 위해 필요한 기분이다.
며칠전에는 집에서 인형을 가져왔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때 받았던 인형으로 정확히는 이모가 그때당시 남자친구한테 화이트데이선물로 받은거였는데 내가 어린마음에 커다란 곰인형이 너무 가지고 싶어서 욕심을 냈고, 솔직히 이모한테도 소중한 인형이었겠지만 내가 고집부리면 장난아니었기때문에 그냥 나를 줬다. 내가 소중한 조카이기도 했겠지만말야.
아무튼 그렇게 치면 20년이 넘은 인형이라 진짜 못버리겠다. 차라리 고등학교때나 그때버렸으면 그냥 버리는거였겠지만 나는 그때도 저 인형을 끼고잤고, 이제는 20년이 넘었는데 내 인생의 절반이상을 함께한 물건이니까 더욱더 버리지 못하겠다. 전자제품처럼 고장나는것도 아니고 옷처럼 내 몸이 커버린것도 아니고 버릴이유를 못찾겠다.
아무튼 인형을 들고왔는데 고양이 털이 덕지덕지 묻어있어서 알레르기가 돋았다. 재채기가 계속나고 눈이 간지러웠는데 절대 우리 고양이가 보고싶어서 우는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